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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오브 어스 - 한 편의 드라마를 경험하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 한 편의 드라마를 경험하다

게시일:  at  10:38 오전

처음 만난 그 게임

내가 예전에, 그리고 지금도 재밌게 했던 게임 중에 “The Last of Us”라는 게임이 있다. PS3용으로 나왔지만, 난 PS4용 Remastered 버전을 사서 처음 해봤다.

정말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손에 땀을 쥐고 했던 거 같다. 게임 줄거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당시 게임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저 평이 좋길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빠져들었다.

Part 1 - 생존과 인간성 사이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곰팡이 감염으로 인류 문명이 붕괴된 세상이다.

주인공 Joel은 딸을 잃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면역을 가진 소녀 Ellie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그저 운반 임무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정을 함께 하면서 둘의 관계는 변해간다. Joel에게 Ellie는 잃어버린 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가 된다. Ellie에게 Joel은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게임플레이도 훌륭했다. 스텔스와 액션이 적절히 섞여있다. 자원은 항상 부족하고, 긴장감은 끝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가치는 스토리텔링이다. Naughty Dog은 게임으로 영화 못지않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캐릭터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Joel의 마지막 선택은 참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버렸다. 하지만 Ellie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은 Part 2로 이어진다.

Part 2 - 관점의 전환

그리고 나중에 Part 2가 나왔다. 줄거리는 Part 1보다 훨씬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많은 게이머들이 Part 2를 싫어했다. 그 이유를 이해는 한다. 사랑하던 캐릭터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플레이어가 원치 않는 캐릭터를 조종해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Part 2는 정말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줄거리가 인상적이었다.

왜 논란이 되었나

Part 2의 초반부는 충격적이다. Joel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이걸 보고 많은 게이머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Ellie의 복수 여정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도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중반부다. 갑자기 Abby라는 캐릭터의 시점으로 바뀐다. Joel을 죽인 바로 그 사람의 시점 말이다.

게이머들은 Abby를 증오했다. 하지만 게임은 Abby의 입장에서 플레이하게 만든다. 이건 참으로 대담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나도 Abby를 싫어했다. 조종하는 게 불편했다. 빨리 Ellie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Abby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Abby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Joel이 Abby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아버지는 Ellie로 백신을 만들려던 의사였다. Part 1의 마지막에 Joel이 죽인 바로 그 사람이다.

충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게임의 배경 상황을 생각하면 선과 악이 꼭 있는 것도 아닌 세상이니까.

관점의 전환이 주는 메시지

Naughty Dog이 하려던 이야기는 명확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것.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유와 정의가 있다는 것.

Joel의 시점에서 보면 그는 Ellie를 지킨 영웅이다. 하지만 Abby의 시점에서 보면 그는 아버지의 원수다.

Ellie의 시점에서 보면 Abby는 Joel을 죽인 악당이다. 하지만 Abby의 시점에서 보면 그녀도 복수를 한 것뿐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과연 누가 옳은가?” “복수의 끝은 어디인가?”

게임이 주는 불편함

Part 2는 편한 게임이 아니다. 플레이하면서 계속 불편하다. 잔인한 폭력을 보고, 직접 행하게 된다.

적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David! David가 죽었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개를 죽이면 주인이 슬퍼한다. 임신한 여성을 죽이면 동료가 울부짖는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계속 물어온다.

일부 게이머들은 이런 불편함을 싫어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이 게임의 목적이라고 본다. 전쟁에는 선과 악이 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이유로 싸운다.

그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게 바로 메시지다.

Naughty Dog의 용기

Part 2는 상업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었다. 게이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죽이다니. 게이머들이 증오하는 캐릭터를 조종하게 하다니.

하지만 Naughty Dog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타협하지 않았다. 이건 참으로 용기 있는 일이다.

게임 업계는 안전한 선택을 선호한다. 속편은 전편의 공식을 따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Part 2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 게임을 마스터피스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최악의 게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Part 2는 잊히지 않는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게 바로 예술의 역할 아니겠는가?

내가 느낀 것

Part 1을 처음 했을 때의 그 감동. Part 2를 하면서 느낀 불편함과 충격.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여운.

이 게임들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게임이 아니었다. 생각하게 만드는 게임이었다.

사실 게임 자체의 완성도도 놀랍다. 그래픽, 사운드, 연기, 모든 게 완벽에 가깝다. 기술적으로도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복수와 용서에 대해. 생존과 인간성 사이의 균형에 대해.

이런 주제들을 게임으로 다룬다는 게 놀라웠다.

Naughty Dog의 다른 게임들

참고로, Naughty Dog은 다른 유명한 게임들도 만들었다. 나도 그 게임들을 정말 재밌게 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쓸 예정이다.

Naughty Dog은 스토리텔링에 강한 회사다.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그들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게임이 영화나 드라마만큼 깊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됐다.

The Last of Us 시리즈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불편함을 주는 것도 게임의 역할일 수 있다는 것을.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게임도 계속 진화한다. 앞으로 어떤 게임들이 나올지 참으로 기대된다.

마치며

The Last of Us를 아직 안 해봤다면 꼭 해보길 권한다. 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작하자. 편안한 게임이 아니니까.

Part 2는 더더욱 그렇다. 논란이 있는 게임이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모든 게이머가 이 게임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경험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게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니까.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바라보자. 게임의 미래는 밝다. 그리고 그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